1912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개성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일본 도쿄에서 연극수업을 했다. 1935년 7월 11일 극단 조선연극사가 공연한 「섬색시」의 대본 집필을 시작으로 「거리의 등불」, 「쌍동이 행진곡」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동양극장이 생긴 뒤, 전속작가로 임선규(林仙圭) 등과 함께 극작 활동을 계속했고, 청춘좌(靑春座 : 동양극장의 전속 극단)를 중심으로 「장한몽」(청춘좌, 1940.3) , 「김유신전」(동일창극단, 1944.11), 「백마」(황금좌, 1945.4)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1939년 영화 「국기 아래 나는 죽으리」에서 주인공 이원하로 출연했고, 1941년 2월 극작가동호회(회장 유치진, 조선연극협회 산하 조직)에 참여했다. 1941년 『경성일보(京城日報)』에 연재한 글(「나의 신연극론」)에서 '신체제에 부응한 일제의 문화정책 수행'을 주장했다. 1943년 5월에는 조선연극문화협회 성지참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했고, 같은해 10월 제2회 연극경연대회에 출품한 「신곡제」에서 식량 증산과 공군 지원병을 선전했다. 이외에도 1944년 11월에는 「30년」(황금좌)을 공연했다.
해방 이후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에 가담했고, 1945년 「직공」(하이엘만스 원작, 극단 일오극장 공연작), 「어머니」(막심 고리키 원작, 극단 해방극장 공연작) 등을 번역, 집필했다. 1946년에는 해방극장(조선연극동맹 극단)에서 3·1운동 기념공연 참가작으로 「꽃과 3·1운동」(미공연)을 집필했다. 이외에도 「눈물의 38선」·「한강물은 흐른다」 등을 발표했다. 6·25 전쟁 당시 납북됐으며,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