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양광도도순문 겸 병마사, 삼사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를 거쳐 1361년 11월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안동으로 남행(南幸)하게 되자 양광도도순문 겸 병마사(楊廣道都巡問兼兵馬使)가 되어 이를 막아 싸웠다.
1363년 3월 흥왕사(興王寺)의 변(變) 때 최영(崔瑩)과 함께 이를 토벌한 공으로 삼사우사(三司右使)로서 흥왕토적공신(興王討賊功臣) 1등에 봉해졌으며, 왕이 안동으로 남행하였을 때 호종(扈從)한 공으로 다시 첨병보좌공신(僉兵補佐功臣) 1등에 봉해지고, 같은 해 11월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기해격주홍적공신(己亥擊走紅賊功臣) 1등에 봉해지고 벽상(壁上)에 도형(圖形)되었다.
1368년 11월 찬성사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하정(賀正)하니 원나라에서 태위감대경(大尉監大卿)을 제수하였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죽은 뒤에 공민왕이 정릉(正陵: 노국대장공주의 능)을 크게 일으키고 운암사(雲庵寺)를 지어 원찰(願刹)로 삼아 매달 30석의 쌀과 기타 경비를 무제한 지급하므로 재신(宰臣)으로서 이를 저지하였다.
원나라의 한림학사승지 기전룡(奇田龍)의 첩과 사통(私通)하여 헌사(憲司)의 탄핵으로 파면되었으나, 왕이 그 탄핵한 장(狀)을 돌리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하였으며, 1379년(우왕 5) 죽었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