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중기에 형조참의, 승문원제조,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성균관전적 · 사헌부감찰 · 정언 · 병조좌랑 · 부수찬 · 수찬 · 홍문관교리 · 사헌부지평 · 응교 등을 거쳐 사간이 되었으나 당시 재상의 뜻에 거슬려 사직하였다. 1583년 다시 종부시정에 임명, 직제학에 이르렀으나 대간의 탄핵을 받고 사직하였다.
하지만 1586년 다시 사간에 임명, 부승지 · 형조참의 · 승문원제조가 되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를 다녀온 뒤 도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조참의로 선조를 호종하다 왕명으로 중전과 동궁을 모시고 성천에 이르자 과로로 병이 들어 죽었다.
이순인은 처음에 이중호(李仲虎)의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뒤에는 이황 · 조식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나 당시 이산해(李山海) · 최경창(崔慶昌) · 백광훈(白光勳) 등과 함께 ‘8문장’이라고 불렸다. 저서로는 『고담집(孤潭集)』 5권이 있다.
참고문헌
- 『고담일고(孤潭逸稿)』
-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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