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담양 출생. 비날론 섬유 발명으로 유명하다. 서울의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마쓰야마[松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교토대학[京都大學] 공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31년에 교토대학을 졸업한 후 다카쓰기[高槻]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교토대학에서 공학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사쿠라다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새로운 합성섬유 개발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때 교토대학에는 1931년에 이태규(李泰圭)가 화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우리 나라 제1호 이학박사) 화학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1937년에 교토대학의 조교수가 되었다. 따라서 이승기와 이태규는 여러 해 동안 교토대학에서 친교를 맺었다.
이승기는 1939년에 교토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바로 일본에서조차 ‘합성 1호’라고 불렀던 비닐론의 발명에 관한 내용이었다.
1935년에 미국의 듀퐁사에서 캐로더스(Carothers,W.H.)가 나일론을 발명(1938년부터 시판되었음)하여 세계가 합성섬유의 회오리에 들어가 있을 때, 이승기의 새로운 합성섬유 발명은 세계적인 발명으로 일본의 자존심을 부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8·15광복 후 1945년 11월에 귀국한 이승기는 서울대학교에 응용화학과를 세우고 초대 공과대학장에 취임했으나, 일부 교수와 학생들의 소위 국대안(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 시위가 심하여 수업과 연구를 할 수 없었으며, 사회는 극히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6·25전쟁 직후 월북하여 1952년부터 북한 과학원 산하 화학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비닐론 생산 연구에 전념하여 1961년에는 함흥비닐론공장(북한에서는 비닐론을 비날론이라고 부름)이 섬유 생산을 시작하였다. 1961년에 북한과학원 함흥 분원의 화학연구소장, 1981년에는 과학원 함흥분원 원장이 되었다.
이승기가 발명한 비닐론은 고급 양복감으로는 쓰이지 못하지만 기타 용도의 옷감, 밧줄, 그물, 천막, 타이어 코드사, 합성 종이 제조 등에 쓰였다. 그는 우리 나라가 낳은 고분자과학 역사 초기의 세계적 과학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