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때, 의병장 이강년의 맏아들로서 아버지를 보좌하여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해 11월 피화리전투에서 부상한 이도악(李道岳)을 이끌고 절벽을 기어올라가 무사히 적진을 벗어난 일도 있다. 1908년 5월 청풍성전투(淸風城戰鬪)에서 의진이 크게 패하고 아버지가 잡혔을 때, 경성으로 가서 옥문을 부수고 통곡하다가 옥에 갇힌 뒤 다음날 풀려나왔다.
그해 9월 19일 아버지가 순국하자 중군장 김상태(金尙台)와 같이 활약하다가 한양리(韓良履)·이기하(李起夏)·정희섭(丁喜燮)·허달(許達)·이응수(李應洙)·서상업 등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고 경성에 잠입하여 왜적 이토[伊藤博文]를 암살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잡혔으나 죄수들의 도움으로 탈옥하였다.
그 뒤 국내에서 재거를 꾀하던 중 적정(敵偵) 일진회원 박준호(朴準鎬)의 음독 유인으로 화를 입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전 박용규(朴龍奎)의 집에서 치료하였으나 피를 토하고 며칠 뒤에 숨졌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자료집』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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