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담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헌부감찰, 충주목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우당(四友堂)
  • 현충(玄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 사망 연도1665년(현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사헌부감찰|충주목사
  • 출생 연도1584년(선조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해영 (경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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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감찰, 충주목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현충(玄忠) 또는 자현(子玄), 호는 사우당(四友堂). 아버지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며, 어머니는 참판 장민(張旻)의 딸이다. 영의정 이시백(李時白)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3년(광해군 5)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유생으로 있으면서 1623년의 인조반정에 아버지, 형과 함께 참여하여 공을 세우고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반정 뒤 6품직을 제수받았고,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사헌부감찰·사직서령(社稷署令) 등을 지낸 뒤 외직으로 나가 충주목사가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1663년(현종 4)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삼부자가 함께 정사에 참여하였다.

1629년에는 무고하게 옥사에 연관되는 등 조정의 분란에 휩쓸려들기도 하였다. 부임하는 곳마다 선정하여 명관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순창·능주 등지에 선정비가 세워졌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재간을 발휘하였으며, 오언시를 특히 잘 지었다. 병조판서를 추증받았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동춘당집(同春堂集)』

  • - 『송자대전(宋子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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