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성균관대사성, 병조참판, 경기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중여(仲如)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성균관대사성|병조참판|대사성
  • 출생 연도1765년(영조 4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일 (성균관대학교, 독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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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대사성, 병조참판, 경기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여(仲如). 아버지는 이의천(李義天)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03년(순조 3) 제술(製述)에서 수위를 차지한 다음 직부전시(直赴殿試)하여 다음해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806년 홍문관부수찬으로 김구주(金龜柱)와 김일주(金日柱)에게 형률을 시행할 것을 청하는 소를 올렸다. 1808년에는 경상좌도암행어사에 임명되어 경상도의 민정을 시찰한 다음 환자(還子: 환곡)의 폐단은 바로 잡아 혁신할 것, 첩역(疊役: 여러 역을 부과함.)의 폐단을 없앨 것, 결전(結錢)을 감해줄 것 등을 청하였다.

1808년에는 부사과로 있으면서 전 경상감사 윤광안(尹光顔)의 실정을 탄핵하는 소를 올렸으며, 1814년에는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다. 그 뒤 병조참판, 경기관찰사를 거쳐 1817년 다시 대사성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827년에는 송면재(宋冕載)·홍원모(洪遠謨) 등과 함께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연경(燕京)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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