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사헌부지평, 병조좌랑,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때 양사의 탄핵으로 파견이 지연되던 진주사(陳奏使) 유성룡(柳成龍)을 명나라로 급파할 것을 요청하였다. 1600년 병조좌랑·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을 역임했으며, 이어 교동현감이 되었다. 1603년 평안도암행어사가 되었으며, 이듬 해 영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때 경상도순검어사 유간(柳澗)으로부터 폐정을 개혁하고 문교(文敎)를 장려하며, 서리들을 엄하게 다스리고 빈민을 구휼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1605년 죽주부사(竹州府使) 때 죽주산성을 견고하게 수축한 공로로 품계를 올려 받았다. 1606년 병조좌랑을 거쳐 홍문관부제학이 되어 경연에 나가 『주역』을 진강하였다. 이듬 해 예조참의 등이 되고, 이어 승정원부승지로 지제교를 겸하였다. 군신 사이에 인망이 두터웠으며, 선조에게 자신을 반성하고 하늘의 뜻에 따라 임금된 책임을 다하도록 요구하였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당시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적극 지지하며 정권을 잡던 소북파의 일당이라는 탄핵을 받아 관작을 삭탈당하고 강계로 유배되어 죽었다. 1820년(순조 20) 참판에 이어 정경(正卿)으로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간정집』이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고선책보(古鮮冊譜)』
- 『당의통략(黨議通略)』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