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진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0년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에 오르고 구성부사가 되었다. 당시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의 군사가 용천(龍川)에 주둔하자 기율이 서 있지 않아 촌야가 소란했으며, 각 읍 수령들이 그들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일이 허다하였다. 그러나 구성부만은 정령(政令)이 엄하고 분명해 지방민으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이어 좌영장 때 갑자기 적의 기병이 이웃 고을에 박두했다는 급보가 와서 좌우사람들이 산 속으로 피할 것을 권유했으나, 군사가 먼저 움직임은 옳지 못하다고 거절하였다. 1623년 위장(衛將)이 되어 조정에 돌아왔다가 부원수 이괄(李适)이 영변에 병영을 설치하자 중군으로 휘하에 있었으나 이괄의 교만하고 방자함을 꺼려하였다.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별장 이순무(李舜懋)와 함께 도원수 장만(張晩)에게로 탈출했다가 난이 점점 확대되자, 반역자를 처단하지 못한 일을 자책하고 자결하였다. 뒤에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에 추록되고, 형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그 뒤 다시 우찬성 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되어 정문이 세워졌다. 옥계(玉溪)의 충현사(忠賢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장의(壯毅)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기언별집(記言別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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