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경(子敬). 할아버지는 이구진(李龜鎭)이고, 아버지는 이환(李渙)이다.
1775년(영조 5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다음해 한림권점(翰林圈點)에 뽑혀 1779년 사간원정언에 부임하였다.
1779년 정언으로서 당대 제일의 재정관으로 명성을 날렸던 우의정 정홍순(鄭弘淳)이 200근의 연다(烟茶)를 뇌물로 받았다 하여 탄핵하다가, 백관을 거느리고 서무(庶務)를 처리하는 대신(大臣)을 지나치게 핍박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당하였다. 그 뒤 곧 다시 등용되어 정헌·헌납을 거쳐 1790년(정조 19) 대사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