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경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익위사부솔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 경호(景浩)
  • 동강(桐岡), 우락당(憂樂堂)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사도세자사건
  • 본관원주(原州)
  • 사망 연도1778년(정조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익위사부솔
  • 출생 연도1704년(숙종 30)
  • 출생지강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재열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동강유고 미디어 정보

동강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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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익위사부솔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경호(景浩), 호는 동강(桐岡) 또는 우락당(憂樂堂). 아버지는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 이언렬(李彦烈), 어머니는 나주오씨(羅州吳氏). 전라남도 강진(康津)에서 태어나 윤동수(尹東洙)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구속되기를 싫어하여 집착함이 없이 돌아다니다 그의 나이 27세에 뜻을 고쳐 공부를 시작, 윤동수 문하의 손꼽는 사대(四大) 제자가 되었다. 1743년(영조 19) 암행어사(暗行御史)의 천거로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1748년 익위사부솔(翊衛司副率)이 제수되자 나아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스승이 되었으며 사도세자로부터 남다른 존경을 받아 친필 시(詩)를 하사받기까지 하였다.

1762년 사도세자가 비명에 죽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주부(主簿)가 제수되고 수직(壽職: 노인에 내리는 관직)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내려졌으나 평생에 이를 받지도 않았고, 죽는 날도 그의 명정에 익위사부솔이라고 만 쓸 것을 유언하였다.

이의경의 대표적 제자로는 고한덕(高漢德)과 이환규(李桓圭) 등이 있다. 강진의 월강사(月岡祠)에 봉향되었으며, 내부협판(內部協瓣)이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동강유고(桐岡遺稿)』·『오복편람(五服便覽)』이 있다.

참고문헌

  • - 『동강유고(桐岡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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