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때 일제의 통감부(統監府)에 의하여 많은 일본인이 용빙(傭聘)되어 각급학교용 도서가 출간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1909년 1월에 한성부가 경의(經義)·시무(時務)의 관리를 선발하는 데 있어서 이 책이 참고서로 지정되었다.
주요 신역사학파에 속했던 일본인 모치지(持地六三郞)의 『경제통론』을 대본으로 편찬한 것으로, 물론 당시의 영국과 독일학자의 고전파이론과 신역사학파 이론을 절충시키려고 한 점도 있으나, 모치지가 그의 저서의 서문에서 “신역사학파에 근본 원인이 되는 신경제학의 원리에 따라 경제학 대체를 통관(通觀)시킬 수 있는 경제학 초보입문서가 결여되었다.”라고 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책은 신역사학파이론이 핵심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편장에는 권1에 총론, 권2에 재(財)의 생산, 권3에 재의 교역, 권4에 재의 분배, 권5에 재의 소비로 되어 있으며, 국민경제의 의의 및 특징과 국민경제의 발전단계에 관해서 자세히 논하고 있는 점은 같은 시대의 다른 저서·역서(譯書)들과 다르다.
생산론·화폐론·은행론·외환론 등은 영국의 고전파이론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있는 반면 경제학의 본질문제에 대한 논의와 분배론·소비론 등은 독일의 신역사학파이론에 따라 설명되어 있다.
특히 공황론(恐慌論)에서는 공황의 주된 원인이 상업의 혼란과 화폐제도의 문란에 있다고 보고, 재의 교환론에서 취급하고 있다는 점과, 외국무역론의 설명에서 자유무역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보호무역론에 역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 등은 독일의 신역사학파의 우두머리인 로셔(Roscher,W.G.F.)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당시 출간된 경제학의 저서와 다른 점으로, 권5 ‘재의 소비’에서 절검(節儉)과 사치를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사제도(禁奢制度)에 대해서는 그 효과가 적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오히려 사치 발생의 근원인 사회의 문란과 재산의 불공평한 분배 등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