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대혼자(大昏子). 경기도 과천 출신. 아버지는 김석집(金奭集)이다. 17세에 관비유학생으로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입학하여 수학한 뒤 1896년 보통과를 졸업하였다. 다음해 동경상업학교(東京商業學校)에 입학하여 1900년 졸업하였다.
귀국 후 낙영학교(樂英學校) 교사로 취임하였다가 1904년 농상공학교로 전임, 이 학교가 1906년 농림학교와 선린상업학교로 분리되자 교사직을 그만두고, 광신상업학교(光新商業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1907년『이십세기조선론(二十世紀朝鮮論)』을 출간하였다.
1909년 부기원리의 응용을 교수할 것을 목적으로 부기일어전습소(簿記日語傳習所)를 차려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이다가, 한일합병을 두달 앞두고 대한제국 학부 편집관보로 관직에 들어가 일본인과 공저로 『농업교과서(農業敎科書)』를 출간하였다.
한일합병 후 관직을 그만두고,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상업학을 강의하였으나, 1년도 못되어 그만두고 행적을 감추었다.
『이십세기조선론』은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실업의 발달과 교육진작을 통하여 항일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으로 당시 일본 통감부(統監府)의 압력으로 소급입법되었던 「출판법」에 의하여 1909년 안국선(安國善)의 「금수회의록」과 더불어 발매반포의 금지처분을 받았다. 그 밖의 저서로는 『응용상업부기학(應用商業簿記學)』(1909)과 『상업범론(商業汎論)』(19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