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견주(見州: 지금의 경기도 양주)이며, 자는 자허(子虛)이다. 삼한공신 이흠률(李歆律)의 6대손이다.
성균시에 합격하고 1106년(예종 1) 4월에 과거에 급제, 나주서기(羅州書記)·통의부녹사(通議府錄事)·국자좨주(國子祭酒) 등을 역임하고, 1135년(인종 13) 묘청의 난이 일어나, 이듬해 2월 서경성을 함락시킬 때 어사잡단(御史雜端)으로 관군을 이끌고 출정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1월 예부시랑으로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만수절(萬壽節)을 축하하였다. 뒤에 어사대부를 거쳐 1141년 3월 국자감시(國子監試)를 맡아 탁광유(卓光裕) 등을 뽑고, 1145년 8월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태자빈객(太子賓客)이 되었고, 1146년 지공거가 되어 동지공거 최함(崔諴)과 함께 황문부(黃文富) 등을 뽑았다. 1147년(의종 1) 12월 상서우복야 참지정사 판형부사, 이듬해 정월 참지정사로서 권판도병마사(權判都兵馬事)가 되었으며, 12월 중서시랑동평장사 판이부사가 된 후, 1153년(의종 7) 10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