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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14대 왕, 선조의 손자이자 16대 인조의 동생으로, 능창군에 봉해졌으며, 신경희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고자 한다는 무고를 받고 유배된 왕족.
이칭
  • 시호효민(孝愍)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615년(광해군 7)
  • 출생 연도1599년(선조 3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공원영 (중경공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능창대군 망건 미디어 정보

능창대군 망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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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의 제14대 왕, 선조의 손자이자 16대 인조의 동생으로, 능창군에 봉해졌으며, 신경희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고자 한다는 무고를 받고 유배된 왕족.

개설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원종(元宗: 定遠君)이며, 어머니는 인헌왕후 구씨(仁獻王后 具氏)이다. 인조의 동생이다. 작은아버지 신성군(信城君)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뛰어나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여 흉도(兇徒)들이 유언비어로써 현혹시키기를, “능창군(綾昌君) 이전(李佺)은 기상이 비범하다.” 하고, 혹은 “정원군(定遠君)의 집에 왕기가 매우 성하다.” 하고, 혹은 “인빈(仁嬪)의 무덤자리가 매우 좋다.” 하였으므로 은연 중 광해군의 시기를 받았다.

1615년(광해군 7) 신경희(申景禧)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고자 한다는 죄수 소명국(蘇鳴國)의 무고로 광해군에 의하여 강화도 교동(喬桐)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는데, 토인(土人) 고봉생(高封生)을 시켜 위리 안에 같이 거주하게 하고, 밖에서 항상 석회수(石灰水)로 밥을 지어 들여보내자 고봉생은 날마다 제 밥을 덜어서 주었다.

어느날 사람이 들어와서 문과 창을 모두 닫고 섶을 쌓아 그 아궁이에 불을 질렀다. 능창군은 죽음을 면하지 못할 줄 알고, 이에 손수 부모에게 영결(永訣)을 고하는 편지 한장을 써서 몰래 고봉생에게 부쳐 보내고 이내 목매어 17세로 죽었다.

이 사건의 주모자 신경희는 죽임을 당하고 양시우(楊時遇)·김정익(金廷益)·소문진(蘇文震)·김이강(金以剛)·오충갑(吳忠甲) 등은 귀양가게 되었는데, 이를 ‘신경희의 옥사’라 한다. 인조가 즉위하자 관봉(官封)이 되었고, 1632년 대군으로 추봉되었다. 시호는 효민(孝愍)이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종반행적(宗班行蹟)』

  • - 『기언별집(記言別集)』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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