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순(子順), 호는 송계(松溪). 이항복(李恒福)의 5대손이며, 이시술(李時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필(李世弼)이고, 아버지는 이정좌(李鼎佐)이며, 어머니는 박신부(朴信阜)의 딸이다.
일찍이 경사(經史)에 통하고, 문장이 세련되고 우아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예문관검열이 되어 세자시강원설서를 겸직, 1740년 후 승문원교리·홍문관수찬으로 세자시강원문학을 겸직하였다.
1744년 상주목사, 이어 대사간·승정원승지·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대과 급제 다음날 영조를 따라 문묘에 배행하여 임금의 언행 수만언(數萬言)을 기록하여 그의 사재(史才: 역사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은 재능)를 인정받게 되었다. 영조의 탕평론에는 따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