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지공거, 지추밀원사, 판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124년(인종 2) 이자겸이 공신호(功臣號)를 받았는데, 이때 이지미도 특별히 비서감 추밀원부사로 임명되었다. 다음해 시예부상서 동지추밀원사(試禮部尙書同知樞密院事)에 올랐고, 지공거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였으며, 그 해 지추밀원사에 이르렀다.
1126년 왕명을 받아 태묘(太廟: 종묘)에 가서 금나라에 대하여 사대정책을 취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점쳤는데, 그 뒤 곧 판추밀원사가 되었다. 이 해 척준경(拓俊京)의 거사로 이자겸 일파가 모두 붙잡혔는데, 이 때 붙잡혀 합주(陜州: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로 유배당하였다.
1129년 왕이 서경에서 돌아와 전국에 사면령을 내렸는데, 이때 모든 형제들과 함께 편리한 데로 한곳에 모여 살도록 허락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李子淵とその家系」(藤田亮策, 『靑丘學叢』13·15, 1933·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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