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우부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643년에는 교리(校理)·수찬(修撰)·헌납(獻納)을 역임했고, 이듬해에는 교리·동부승지(同副承旨)를 지냈다. 1648년에는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지냈고, 1649년에는 대사간(大司諫)·대사성을 지냈다.
당시 집의(執義) 송준길(宋浚吉)에 의하여 권문(權門: 권세있는 가문)에 아첨하는 부패공직자라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하였으며, 조정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붕당을 짓는다고 낙인찍혀 유배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1650년에는 통정대부 이조참의 지제교 겸 춘추관 수찬관(通政大夫吏曹參義知製敎兼春秋館修撰官)으로서 삼방(三房: 과거를 볼 때 세 試官이 있던 곳) 당상(堂上)이 되어『인조실록(仁祖實錄)』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651년(효종 2)에는 부제학(副提學)과 참찬관(參贊官)을 역임하면서 대동법과 관련한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그 해 간원에 의해 탐관오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특진관(特進官) 허적(許積)·동지경연(同知經筵) 조석윤(趙錫胤)·시독관(侍讀官) 홍명하(洪命夏)의 도움으로 누명을 벗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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