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 예술·체육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태양이 그리워」, 「태풍지대」, 「우물」 등을 연출한 연출가. 연극연출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84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6년
  • 출생지평안북도 신의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민영 (단국대학교, 연극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태양이 그리워」, 「태풍지대」, 「우물」 등을 연출한 연출가. 연극연출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 1938년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를 졸업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는 재학시절부터 신극운동에 뛰어들어 이해랑(李海浪)·김동원(金東園) 등과 동경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를 조직해 일본에서부터 아마추어 연극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대학을 마치고 즉시 귀국하여 1938년부터 극연좌(劇硏座)에 입단하였다.

그러나 그 단체가 해산당하자 광복될 때까지 연극계를 떠나 있었다. 광복과 함께 중국에서 돌아온 그는 극단 신지극사(新地劇社)를 창단하여 조우(曺禹)의 <태양이 그리워>를 연출함으로써 연출가로 변신하였다.

그러나 연출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데다가 생활고까지 겹쳐서 상업적인 악극과 여성국극(女性國劇) 쪽으로 방향을 돌려, 대본 각색과 연출을 주로 하였다.

따라서 그가 정통극 연출가로 본격 진출한 것은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였고, 국립극단의 <태풍지대>·<우물> 등이 그의 초기작품이다. 연극전문지 ≪연극≫을 창간하기도 한 그는 1966년 극단 광장(廣場)을 창단하여 동인제 시스템의 주도하의 한 사람으로서 창작극 개발과 근대극 소개에 진력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중진연출가로서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와 예술원 회원, 그리고 연극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 나라 연극의 방향을 상업주의 쪽으로 돌려갔다.

즉, 극단 광장을 선두로 하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전쟁과 평화> 등의 대형작품을 자주 무대에 올린 것도 그러한 상업주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만년에는 창극연출에 심혈을 쏟았다.

국립극장의 창극정립작업에 앞장섰던 그는 중국의 고전극인 경극(京劇)을 부분적으로 모방하면서 창극연출에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려고 애썼다.

물론 그러한 그의 작업은 실패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창극을 실험적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주목받을만 하였다. 저서로 ≪한국연극사 韓國演劇史≫(제3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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