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유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헌납, 장령,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진(而珍)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헌납|장령|승지
  • 출생 연도1713년(숙종 3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일 (성균관대학교, 독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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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헌납, 장령,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진(而珍). 세종의 아홉째 서자(庶子) 영해군(寧海君) 이당(李瑭)의 11대손이며, 이정린(李廷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병조참판 이언강(李彦綱)이고, 아버지는 도승지 이춘제(李春躋)이며, 어머니는 조원명(趙遠命)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4년(영조 10) 강경(講經)에 뽑혀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여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에 급제하였다. 1740년 정언으로 처음 부임하여 신평이 되었으나 1745년 한권(翰圈)의 빠르고 느린 것에 대하여 간섭할 바가 아닌데, 신칙(申飭: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함.)할 것을 아뢰어 대간(臺諫)의 체통을 크게 손상시켰다고 하여 파직당하였으나 곧 지평으로 복직되었다.

그 뒤 정언·헌납·장령을 역임하다가 1748년 헌납으로 있으면서 친제(親祭) 때의 집사로서 참여하지 않아 중화부(中和府)에 잠시 유배되었다. 이듬해 장령·필선·사간·보덕·집의를 거쳐 1752년 승지가 되었다.

1764년 승지로 있으면서 그 해에 해서(海西) 지방에 재해가 있어 감선(減膳: 임금의 수라상의 반찬수를 줄여 경계를 삼던 일)하라는 하교가 있었으나 이를 지체하였다고 파직당하였다가 다시 복직되었다.

참고문헌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영조실록(英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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