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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선봉장으로 활약하였으며, 부여현감, 옥천군수 등을 역임한 학자·의병장.
이칭
  • 가악(佳嶽)
  • 덕재(德載)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성주(星州)
  • 사망 연도1647년(인조 2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여현감|옥천군수
  • 출생 연도1565년(명종 20)
  • 출생지상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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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선봉장으로 활약하였으며, 부여현감, 옥천군수 등을 역임한 학자·의병장.

개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덕재(德載), 호는 가악(佳嶽). 함창 출신. 아버지는 장례원판결사 이응춘(李應春)이며, 어머니는 함창김씨(咸昌金氏)이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용맹이 있어 무예에 숙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4년(선조 17) 효행으로 천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황령(黃嶺)에서 의병을 일으켜 선봉장이 되어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 1596년 그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고, 부여현감에 임명되었다.

뒤에 옥천군수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훈련원정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고향에 돌아가 대가산(大佳山) 아래 정사(精舍)를 짓고 자제들을 교육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뒤에 경충사(景忠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가악재실기(佳岳齋實記)』

  • - 『선조실록(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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