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거용(巨容), 호는 칠택(七澤).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7대손이며, 이대(李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양(李樑)이고, 아버지는 이정빈(李廷賓)이며, 어머니는 최희령(崔希齡)의 딸이다.
1600년(선조 3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무장현감을 거쳐 1606년 성천부사로 나갔다가 형조정랑을 거쳐 다시 상례(相禮)·광주목사(廣州牧使)를 역임하였다. 1609년(광해군 1) 사도시정(司䆃寺正)으로 춘추관편수관을 겸직하여 『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나주목사를 거쳐 161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가 행대사간·이조참판·병조참판·한성판윤을 지냈다. 1616년 선수도감제조(繕修都監提調)·우참찬·형조판서를 거쳐 호조판서가 되었으며, 1617년에는 우찬성으로 승자되었다. 1618년에는 좌부빈객(左副賓客)·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역임하였으며, 1619년 사망하자 우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