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희능(熙能). 이계(李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희담(李喜聃)이고, 아버지는 이협(李峽)이며, 어머니는 조태과(趙泰果)의 딸이다. 이우(李堣)에게 입양되었다.
생원을 거쳐 1757년(영조 33)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1763년 부교리에 처음 임명된 뒤 정언 · 부수찬 · 수찬 · 헌납 · 지평을 역임하였다. 1765년 굶주린 백성이 가장 많은 광주부(廣州府)에 특별히 안집어사(安集御史)로 파견되어 덕의(德意)를 선유(宣諭)하고 유민(流民)들을 안집시키고 돌아와 교리 · 부교리를 지냈다.
1771년(영조 47)에는 동지사(冬至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1773년 승지를 거쳐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775년 도승지 · 승지 · 부제조 ·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홍인한(洪麟漢) 등과 세손(世孫: 正祖)의 대리청정을 극력 반대하고 심상운(沈翔雲)을 시켜 세손을 보호하는 홍국영(洪國榮)을 배척하는 등 세손을 모해하려고 했던 정후겸(鄭厚謙)이 유배, 사사(賜死)되자 이에 연좌되어 평소에 정후겸을 아비처럼 따르고 섬기었다는 탄핵을 받고 명천부(明川府)에 유배되었다.
1784년(정조 8) 대사면령에 의하여 직첩(職牒: 관직 임명사령장)이 환급(還給)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