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풍익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개항기 때,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육완당(六玩堂)
  • 자곡(子穀)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 사망 연도1887년(고종 24)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04년(순조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성학 (고려대학교도서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단발령 / 이풍익(전) 미디어 정보

단발령 / 이풍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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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때,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곡(子穀), 호는 육완당(六玩堂). 아버지는 이존우(李存愚)이며, 어머니는 풍산홍씨(豊山洪氏)로 홍경안(洪景顔)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우의정 이화우(李和愚)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29년(순조 29) 춘당대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정자가 되었고, 1838년(헌종 4) 병조정랑, 1847년 대사간, 1873년(고종 10) 대사헌·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44년 경상좌도의 시관으로 있을 때 감식에 밝고 공평하였으므로 영남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1858년(철종 9) 어사 이건필(李建弼)의 탄핵을 받아 김제로 귀양갔으나 곧 풀려났다. 1866년(고종 3) 동지상사(冬至上使)로 연경(燕京)에 갔다. 1881년(고종 18) 예조판서로 있을 때 동궁의 풍악설치문제로 이론이 있었으나 『서전(書傳)』의 고사를 인용하여 악관의 설치를 청하여 채택되게 하였다. 그뒤로 동궁이 거동할 때나 사부(師傅)의 상견례를 행할 때는 풍악을 설치하는 것이 정식화되었다. 저서로는 『육완당집』 6권이 있다.

참고문헌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육완당집(六玩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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