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대한비뇨기과학회장, 범국제외과학회장 등을 역임한 의료인. 의사, 의학자.
생애 및 활동사항
1936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피부과 강사가 된 뒤 일본 동경대학 피부비뇨기과에서 임상실습 겸 연구를 계속하였는데, 학위논문 「웅성홀몬이 물질대사에 미치는 영향」으로 동경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40년 귀국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피부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장을 맡았으나 광복 후 한때 서울 회현동에서 개업하였다.
1949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겸 비뇨기과 과장으로 부임하여 1969년까지 재직하였다. 재임 중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 유학한 바 있고, 사회적으로는 대한비뇨기과학회장, 고등고시위원, 인권옹호위원회 서울지부 지도위원, 대한비뇨기과학회 명예회장, 대한가족계획협회 부회장, 국제비뇨기과학회 한국지부장 등에 추대되었고, 퇴임한 뒤에도 대한나협회장·범국제외과학회장 등을 맡는 등 학문발전을 위하여 국내외적으로 공이 많았다. 논문 24편, 지도논문 51편, 공저논문 26편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참고문헌
- 『한국의학의 개척자』(정구충, 아랑인쇄사, 1985)
- 『한국명현명사교훈보』(한국명현명사교훈보편찬회,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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