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언(明彦), 호는 경재(敬齋).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후손으로, 이창휘(李昌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풍산홍씨(豊山洪氏)로 이조판서 홍중기(洪重箕)의 딸이다. 처음에는 이건명(李健命)에게 배웠고 26세 때인 1716년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과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깊었고, 총명하여 문일지이(聞一知二)의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1717년(숙종 43) 임금의 행차를 기념하기 위하여 청주에 설장(設場)한 도내별과(道內別科)에 제 4등으로 뽑혔으나 이후 과업(科業)을 단념하고, 『소학』을 탐독하여 학문의 근본으로 삼고 성경(誠敬)과 궁리진성(窮理盡性)에 힘써 학행(學行)을 쌓았다.
이해의 문장은 경사(經史)에 기본을 두어 호한(浩汗)한 기풍을 이루었으니 흔히 당송팔대가의 문장에 비교되기도 하였다. 이해는 사서(四書)를 매우 깊이 연구하였는데, 대개 주자(朱子)보다는 정자(程子)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저서로는 『경재집(敬齋集)』 3권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