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안(景顔). 아버지는 훈련대장 이기하(李基夏)이다.
음보(蔭補)로 사직이 되고, 여러 무관직을 거쳐 1793년(정조 17)에 전라우도수군절도사를 거쳐 이듬해 황해도수군절도사·경상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805년에 우포도대장이 되고 1807년에 금위대장을 역임하였다. 1810년에 평안도절도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어영대장을 역임하였다.
그 해 평안병사로 평안도에 부임하였을 때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 가산·박천을 순식간에 점령하자 토벌에 나섰으나 홍경래가 이끄는 남진군(南進軍)에게 송림리(松林里)에서 크게 패하였다.
이듬해 정월 15일 그동안 관군의 승리로 퇴패, 정주성에 주둔하고 있던 반란군에 일제히 공격을 가하였으나 연패하고 말자 그 책임으로 해임되었으며 순창군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다섯달 만에 바로 석방되어 우포도대장·금위대장을 역임하였다.
1819년 훈련대장을 역임하였으나 2년 만에 병환으로 사임하였다. 1826년 어영대장에 다시 임명되었다가 그해 왕의 특지로 형조판서로 승진되고 한릉군(韓陵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