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백용(伯容). 이지(李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덕항(李德恒)이고, 아버지는 이순중(李純中)이며, 이관중(李寬中)에게 입양되었다.
1750년(영조 2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52년 장령으로 부임하여 다음해 정언을 지냈다. 1762년 사간으로서 영남지방에 흉년이 들자 이를 자세하게 상소하여 구제하도록 하게 하였으며, 그 해 선정신(先正臣) 문원공(文元公) 이언적(李彦迪)의 후예라는 이유로 세자의 강학(講學)을 위하여 특별히 사서(司書)에 임명되었다.
1763년 집의·필선·사간을 역임하였고 동지사(冬至使) 서장관으로 중국을 다녀온 뒤 교리·집의를 지내다가 빼어난 현인의 후손으로 삼사(三司)를 출입하면서 몸가짐을 잘못한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765년 사간으로 다시 등용되어 집의·부수찬을 역임하였으며, 1768년에는 특별히 승지로 관품이 오르게 되었다. 1773년 대사간, 1775년 동부승지, 1785년 대사간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