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영평현감,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성균관전적으로 다시 서용되었고 이어 호조 · 병조 · 형조의 좌랑을 지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아버지 광정과 함께 천안으로 가서 의병을 모집하였다. 인조를 호가해 서울로 돌아온 뒤 예조정랑에 올랐으며, 곧 영평현감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1625년(인조 3) 어머니의 상을 치르고 직강 · 태복첨정을 거쳐 예빈시정으로 승진했고, 정언 · 장령 · 문학을 두루 지낸 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사직하였다. 1629년 다시 정언을 제수받았으며, 1634년 순천부사로 나가 백성을 잘 다스려 가자되고, 이어 공청도양전사(公淸道量田使)가 되었다.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1636년 양서관향사(兩西管餉使)로 공을 세워 이듬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다. 곧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의주 백마산성(白馬山城)에서 병을 얻어 죽었다.
글씨로 당대에 이름이 높아 1630년 『목릉지(穆陵誌)』를 썼고 2년 후에는 국장도감(國葬都監) 서사관(書寫官)을 지내기도 하였다. 자헌대부(資憲大夫)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용주유고(龍洲遺稿)』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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