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록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영보(永甫)
  • 이칭완릉군(完陵君)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신임사화|이인좌의 난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730년(영조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홍주목사|전라도관찰사|대사헌
  • 출생 연도1684년(숙종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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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영보(永甫). 우의정 이후원(李厚源)의 현손이며, 이주(李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산휘(李山輝)이고, 아버지는 완흥군(完興君) 이섭(李涉)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군자감정 윤협(尹悏)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음서로 헌릉참봉(獻陵參奉)에 기용되어 장원서봉사(掌苑署奉事)·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금구현령·전주부판관 등을 거친 뒤 1722년(경종 2)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에 올랐다.

그러나 그 해에 신임사화로 노론이 추방되자 소론의 음모를 규탄하다가 순흥부에 유배되었고, 1724년에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다시 집권하자 풀려나왔다.

그 뒤 병조좌랑·병조정랑·이조좌랑·부교리·교리·부응교·응교·지제교·검상·사인·사간·집의 겸 시강원문학·필선 등을 역임하였다.『숙종실록』편찬시에는 의리를 밝히는 데 힘쓸 것을 간하기도 하였다.

1726년(영조 2) 종묘를 개수한 공로로 통정(通政)에 승계되어, 승지를 거쳐 병조참의·예조참의와 대사간을 지내고, 홍주목사·전라도관찰사로 나가 진휼과 교화 등에 힘썼다. 그러나 1727년 정미환국으로 다시 노론이 세력을 잃게 되자 파직되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공을 세워 완릉군(完陵君)에 봉해지고, 그 이듬해에는 형조참판·호조참판으로 부총관·비변사당상을 겸임하고, 이어 대사간·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인품이 소탈하고 노론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지수재집(知守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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