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 임시정부요인 이승호(李承浩)의 맏아들이다.
1939년 경복중학교(景福中學校) 4학년 재학중 한용운(韓龍雲)·안재홍(安在鴻)·여운형(呂運亨) 등의 감화를 받아 같은 학교의 학우와 중앙중학교의 남상갑(南相甲), 경성사범학교의 김성한(金盛漢)·이경춘(李慶春) 등과 조국광복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의하였다.
1941년 상급 전문학교로 진학하자, 주낙원(朱樂元)의 집에서 흑백당(黑白黨)을 결성하고 선언문·강령·규약 등을 제정하였다. 친일파와 일제요인을 처단하기로 하고 홍건표(洪建杓)와 함께 거사에 필요한 무기를 경복중학교의 무기고에서 빼내는 한편,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살포하였다.
그러나 거사 직전 1942년 초에 동조자 김창흠(金昌欽)이 일본경찰에 잡힘으로써 흑백당조직의 전모가 드러나 당원들은 수배를 받게 되었다. 국내활동이 어렵게 되자 광복군에 투신하여 독립투쟁을 하기로 흑백당원들과 결의하고, 만주의 신경(新京: 지금의 長春)으로 2, 3명씩 나누어 떠났다.
그러나 일본경찰의 추격을 받아 1944년 1월 북경(北京)·봉천(奉天: 지금의 瀋陽)·신경 등지에서 모두 잡혀 송환되었다. 징역 8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