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원여(元汝). 이병건(李秉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산중(李山重)이고, 아버지는 참판 이태영(李泰永)이며, 어머니는 유한모(兪漢萺)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강제(講製) 문신이 되었다. 호남암행어사·홍문관교리를 역임하였다. 1801년(순조 1) 부호군으로 사건에 연루되어 칠원에 유배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1807년 이조참의, 이듬해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12년 대사간, 1814년 이조참판을 역임하였고, 1816년 함경도감사로 부임하여서 수재로 큰 피해를 본 함흥을 비롯한 6개 읍에 진휼정책(賑恤政策: 재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제하는 정책)을 잘 수행하였다.
이듬해 이조판서로 임명되었고, 1820년 판의금부사로서 동지정사로 임명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예조판서·형조판서·수원부유수·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27년 평안도관찰사로서 탄핵을 받아 한때 삭직되었다가 다시 판의금부사로서 1830년 책저도감제조(冊儲都監提調), 이듬해 전의도감제조(典醫都監提調) 등을 역임하였다. 1833년 70세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시호는 정헌(正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