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그의 본관에 대해 홍직필(洪直弼)은 청양(靑陽)이라 하였으나 『국조방목』에는 함평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아마도 후자가 맞을 듯하다. 자는 사명(士鳴), 별호는 기기옹(棄棄翁).
일생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진사로서 1739년(영조 15) 알성갑과에 급제하였으며, 1743년을 전후하여 양덕현감을 역임하면서 병이 들어 파직을 청하는 계(啓)를 올렸으나 윤허가 내리지 않았다. 윤동수(尹東洙)의 문생인데, 윤동수는 윤증(尹拯)의 아우 추(推)의 손자로 영조 때 동부승지로 특별히 배수되었던 사람이다.
여러 가지 이설이 있기는 하나 『청야만집(靑野謾集)』의 편자로 일컬어진다. 이 책은 규장각본 서문에 의하면 1739년 편찬되었으며, 대략 11종의 이본이 존재한다. 여말 이래 조선 숙종조까지 역대 사실에 관한 공사기록을 역대 왕조의 편목에 따라 집성한 것으로, 서인 내지는 소론의 입장이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