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읍지(仁同邑誌)』는 경상도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일부와 칠곡군 일부]에서 편찬하였다.
1책 20장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경상도인동읍지(慶尙道仁同邑誌)’이고, 권수제는 ‘인동읍지(仁同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1760년(영조 36)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실린 「대구진관인동도호부(大丘鎭管仁同都護府)」 읍지 이전 시기에 제작된 「인동속대구진(仁同屬大丘鎭)」 읍지를 저본으로 하여 1878년(고종 15)에 편찬하였다.
크게 채색 지도 2면과 ‘인동부선생안(仁同府先生案)’, ‘인동읍지’로 구성하였다. ‘인동부선생안’에는 고려 후기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던 1391년(공양왕 3)의 김국(金鞠)부터 1876년(고종 13) 4월~1877년(고종 14) 12월에 재직한 이관응(李觀應)까지 기록하였다. 인동에 부임한 지방관의 이름과 거주지, 부임과 체임 시기, 체임 이유, 주1의 성명까지 기재하였으며, 주2 위쪽에 수령들의 출신을 문(文) · 무(武) · 남(南)으로 표기하였다.
후반부의 ‘인동읍지’는 ‘인동속대구진’ 강역,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속현(屬縣), 군명(郡名),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장시(場市), 봉수(烽燧), 누정(樓亭), 학교, 사찰, 고적(古蹟), 진보(鎭堡), 명환(名宦), 인물, 효자, 효부, 열부, 충용(忠勇), 제영(題詠),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호총(戶摠) 순으로 구성하였다.
1760년 홍문관에 보고한 『여지도서』의 ‘대구진관인동도호부’ 읍지에는 이 읍지에 없는 형승과 궁실, 총묘 항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항목별로 수록한 내용도 다르다. 이 읍지의 저본이 『여지도서』로 성책되기 이전 단계에서 편찬한 것이었기 때문이며, 이 읍지에는 저본에 없던 장시와 호총 항목을 신설하였다.
1871년(고종 8)의 주3와 1895년(고종 32)의 주4, 1882년(고종 19)의 주5는 같은 구지(舊誌)를 그대로 베끼면서, 학교와 호총 등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선생안에 후임 지방관들을 덧붙여 썼다. 주6의 「인동읍지」[1878]와 1899년(광무 3)에 보고한 주7는 ‘인동부선생안’을 생략하였다. 한편, 1832년(순조 32)의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8]와 1841년(헌종 7)의 주9 수록 「인동부읍지」는 1768년(여조 44)의 『여지도서』를 대체하기 위하여 보급한 『경상도읍지』 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