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목왕후 어필 칠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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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가 쓴 해서체(楷書體) 글씨의 족자.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승모 (전남대학교, 문화인류학)
  • 최종수정 2023년 03월 29일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 미디어 정보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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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가 쓴 해서체(楷書體) 글씨의 족자.

내용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글씨 아랫부분에 있는 배길기(裵吉基)라는 사람이 쓴 발문(跋文)에 의하면, 인목왕후가 대비(大妃) 때 1613년(광해군 5) 이이첨(李爾瞻) 등에 의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했다는 공격을 받아 사사(賜死)된 아버지 김제남(金悌男)과 아들 영창대군을 위하여 칠장사(七長寺)를 원당(願堂)으로 삼아 중건하면서 쓴 글이다.

『최승왕경(最勝王經)』과 함께 김광명(金光明)에게 준 것이라고 하며, 고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늙은 소 힘쓴 지 이미 여러해(老牛用力 已多年),/목 부러지고 가죽 헤어져 잠자기만 좋아하네(領破皮穿 只愛眠)./쟁기질, 써레질 이미 끝나고 봄비도 충분한데(犁耙已休 春雨足),/주인은 어찌하여 괴롭게도 또 채찍을 가하네(主人何苦 又加鞭). 크기는 세로 110㎝, 가로 50㎝이고 저본(楮本)이며, 경기도 용인시 경기도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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