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책. 필사본. 그의 문집은 산일되어 전모를 알 수 없는데, 이 책은 그가 남긴 글의 일부이다. 전체 문집에서 1802년부터 1810년까지의 시를 모은 것이 ≪인수옥집≫으로 편집되어 있다. 주가 달린 곳도 있는데, 쌍행(雙行)으로 되어 있다.
7책 중에 6책은 횡성(橫城)의 방손가(傍孫家)에 소장되어 있고, 척독(尺牘)이 실린 1책은 일본 텐리대(天理大)에 소장되어 있다. 방손가에 소장된 것은 1802년부터 1805년까지 1책, 1806년부터 1809년까지 1책, 1809년에서 1810년까지 1책, 1810년에서 1811년까지 1책으로 되어 있으며, 시문을 수록하고 있다.
또 1806년의 것은 ‘고정기사(苽亭紀事)’의 이름으로, 1810년의 것은 ‘기경기사(己庚紀事)’의 이름으로 각기 1책의 별집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한시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는 ≪인수옥집≫은 1책 42장으로 되어 있다. 1810년에서 1811년까지의 책을 전반부에 싣고, 후반부에는 ≪추수근재집 秋樹根齋集≫의 일부를 따로 실은 것이다. 전반부는 방손가에 소장된 것과, 후반부는 일본 텐리대에 소장된 것과 완전히 동일하다. 각 책의 권두에 저작의 시기를 간지로 밝혀 놓았다.
≪인수옥집≫에는 한시 400여 수와 척독 20여 수가 실려 있다. 그 중에서 ≪고정기사≫와 ≪기경기사≫에 실린 일련의 시들은 정약용(丁若鏞)의 기속악부의 영향을 받아 지은 것이다. 농촌과 어촌 사회의 물정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것도 있고, 당대의 학정을 비판하며 백성에 대한 따뜻한 눈길을 보낸 것이 주목된다.
그밖에 <산유화가 山有花歌>를 비롯한 그의 많은 시들은 민요를 수용하여 남녀의 애정을 운치 있게 묘사해 내고 있다. <성중전도 城中全圖>는 한양의 지도를 보고 쓴 장편시로 당시 한양의 풍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또 김해 지방의 풍속을 낭만적으로 읊고 있는 <금관죽지사 金官竹枝詞>는 1809년에 지은 30수 연작시이다. 이학규는 1819년 다시 <금관기속시 金官紀俗詩> 78수를 다시 제작하는 등 풍속의 시적 재현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산문 중에는 <덕혜소전 德慧小傳> 등의 전과, 기(記)·서(序)·부(賦)·서독(書牘)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별책에 들어 있는 척독은 그의 문학관을 피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해(金海)의 풍속과 민간의 교육 실태, 소설을 애호하는 실상 등을 증언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인수옥집≫은 한국한문학회에서 여러 곳에 흩어진 그의 글을 모아 편집하고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한 ≪낙하생전집 洛下生全集≫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