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朴榮濬)이 지은 장편소설.
1934년 ≪신동아≫에 현상 응모하여 당선된 작품으로 그 해 3월부터 10월까지 연재되었다. 이때 콩트 <새우젓>이 함께 당선되었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는 단편소설 <모범경작생>이 당선되었다. <일년>은 그 제목만 간간이 알려졌을 뿐,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던 관계로, 문학사연구·농민문학론 심지어 박영준 개인에 관한 문학적 연구에서조차도 언급이 드물었던 작품이다.
그러던 중, 1974년 그의 문단생활 40주년에 그의 모교이자 재직교인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재전재하여 ≪대학문고≫ 7로 간행함으로써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일년>은 숙명적으로 흙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의 가난한 생활과 농촌의 현실을 계절적 순서에 따라 26장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각 계절별 구체적 내용의 흐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1∼10장까지는 봄 이야기로, 주인공 성순이 소를 빌어 보리밭을 갈고, 성순의 처 진심은 가난을 이기려고 장으로 나가 감자장사를 하며, 김참봉에게 돼지밥이라 할 감자를 꾸어다 먹은 사람들은 그를 위해 온갖 노역을 한다.
한편 태은이네는 고리대금업자인 최주사의 빚을 갚기 위해 닭을 팔고, 다시 김참봉의 농간으로 닭이 죽자 고향을 떠나게 되며, 제련소의 직공이 된 태은이는 결국 이 일도 농사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성순은 그 처절한 가난과 착취 속에서도 묵묵히 조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새로 길을 닦는 데 동원되고, 모내기, 단오 준비를 한다.
11∼21장까지는 여름 이야기로, 여기서도 가난은 이어진다. 김매며 부르는 노래 속에 한을 풀어보기도 하고, 관리의 강요에 의해 뽕을 심고 잘 길러 일등상을 타기도 하였으며, 외국 자본에 의한 농장을 세우는 데 동원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져 의사를 부르지만 홀대를 받을 따름이며,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너희만은 굶지 말고 살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시지만 돈이 없어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 동생 영순이는 평양 가서 상점 일하며 설움만 겪게 되며 약혼녀인 확실이마저 돈 때문에 참봉의 아들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그 다음 22∼23장까지 가을 이야기에서는 추수를 하지만 수확의 기쁨도 빼앗기고마는 허탈감을 드러낸다. 24∼26장까지 겨울 이야기에서는 쉬지도 못하고 벼맛질과 나무하기, 물레질 등으로 살아야 하는 농민이 부각된다. 그러나 이들 순박한 농민도 이제는 달라졌다. 참봉이 소작료를 올려달라고 하자 동네사람들은 진정서를 쓰며 집단행동을 보이고, 영순과 확실이는 모든 장애를 뛰어넘고 평양에서 만나 같이 살게 된다.
그런데 일곱번째 장에 해당하는 ‘호세’편의 전부와 ‘치도’·‘신축농장’·‘의사’ 장의 일부가 검열과정에서 삭제된 채 발표되었다. 박영준의 초기작품으로는 단편 <모범경작생>이 자주 언급되며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으나, 이보다는 <일년>이 중량감으로 보나 작품수준으로 보나 오히려 나은 것으로 평가되며, 초기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논의되고 있다.
두 작품은 인물·배경·사건 등에 있어 유사점이 많다. 그렇지만 <모범경작생>이 농촌생활의 가장 중심기인 모내기와 추수까지를 배경으로 설정하여 압축미로 농민의 주관심사인 세금과 소작료문제를 다루고 있는 데 비하여, <일년>은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의 사계절의 순환을 시간구조로 삼으면서 일년 동안의 농사세시기와 밀착된 농민의 피수탈과 몰락과정을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필치로 서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년>은 일자리를 찾아 뜨내기노동자로 유전하며 굶주리는 농민들의 참담함과 관료들의 허언, 지주들의 횡포 등을 반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첨예화시켰다. 작자 자신도 이 작품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일제치하에서 세금과 부역 등으로 부당한 착취를 당하였고, 또 국내 지주의 지나친 소작료에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소작인의 일년 동안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그려보려 한 작품이 <일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작품은 농민에 대한 지식인의 계몽이나 값싼 동정, 순간적 감상 등을 벗어났으며, 특정이념이나 사회운동과도 별다른 관련을 가지지 않을 뿐더러, 농민의 실상이나 집념 등을 철저한 농민 자신의 눈과 언어를 통하여 묘사하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농민들의 내적 울분이나 분노를 절제하면서 현실을 파악하는 데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농민소설로서의 설득력이 배가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에서는 풍부한 언어와 유려한 표현이 말라 있으며, 극적인 구성이나 반전의 효과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장편소설로서 단조롭다는 부정적인 지적이 있기도 하나, 그러한 단조로움은 그의 인물들의 구성이나 성격이 단순대립의 범위를 못 벗어나고 있는 데서도 나타난다.
또한, 작품 속에 작자 자신을 투여함으로써 직접 현실을 있는 그대로 형상화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을지 모르나, 이러한 상황을 전형화하지는 못하였고, 뚜렷한 가치체계를 역사나 시대에 투철하게 대입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