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복

  • 역사
  • 인물
  • 남북국
남북국시대 발해의 청수대부를 역임한 관리. 외교가.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청수대부(靑綬大夫)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송기호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남북국시대 발해의 청수대부를 역임한 관리. 외교가.

내용

발해 제3대 문왕시대에 활동하여, 일본에 대사(大使)로 파견된 771년에는 청수대부(靑綬大夫)에 이르렀지만, 그 뒤의 행적이 불명하여 최종 관작은 알 수 없다.

771년 발해 사신단을 이끌고 일본으로 출발하여 6월 일본 데와국(出羽國)에 도착하였는데, 이 사신단은 인원이 325명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서 모두 17척의 배에 나누어 탔다. 이 사행에는 일본인 나이이우(內雄)가 발해에서 음악을 배우고 돌아간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안부를 알 수 없어 이를 알아보려는 데에도 목적을 두었다.

772년 정월 일만복 등 40명이 일본 수도에 들어가 신년 축하 의례에 참여하고 가져간 물품을 전하였다. 그러나 일본 조정은 발해 국서(國書)의 형식이 전례에 어긋나고, 또 발해 왕실을 천손(天孫)이라 칭하였다고 하여 이들을 꾸짖으면서 물건과 국서를 돌려보냈다.

이에 일만복은 그 내용을 일부 수정하고 발해 왕을 대신하여 사과하였다. 2월에 이르러 일본은 이들에게 잔치를 베풀면서 대사인 일만복에게 종삼위(從三位)를 주고 일행에게도 위계를 차등 있게 주었으며, 선물도 발해 왕 및 대사 이하 사신들에게 역시 차등 있게 주었다.

그는 9월에 일본을 출발하였는데, 이 때 일본 조정은 다케후노도리모리(武生鳥守)에게 동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폭풍을 만나 노토국(能登國)에 겨우 표착하여 후쿠라진(福良津)에 안치되었다가 나중에야 발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참고문헌

  • - 『속일본기(續日本紀)』

  • -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