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암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학자, 윤인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8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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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윤인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8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08년에 후손들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말에 박종하(朴鍾河)의 후지(後識)가 있다.

서지적 사항

9권 4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영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부(賦) 1편, 시 109수, 권2에 시 100수, 권3∼5에 서(書) 101편, 권6에 잡저 4편, 서(序) 3편, 기(記) 3편, 잠(箴) 5편, 명(銘) 7편, 전문(箋文) 1편, 상량문 2편, 권7에 축문 1편, 제문 18편, 뇌문 1편, 애사(哀辭) 1편, 권8에 찬(贊) 2편, 전(傳) 2편, 유사 4편, 권9에 묘갈명 2편, 묘지명 5편, 행장 6편, 부록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전의 「문화유씨사의사전(文化柳氏四義士傳)」은 임진왜란 때 문화유씨 문중의 의사 유정(柳汀)·유영춘(柳營春)·유백춘(柳伯春)·유태영(柳泰英)의 전기이다. 유정은 형조참판 유광선(柳光先)의 아들로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적이 쳐들어오자 경주에서 독서하던 것을 그만 두었다. 마침내 4월 18일부터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의병장 윤홍명(尹弘鳴)·이응춘(李應春)·장희춘(蔣希春)과 함께 항전하다가 1597년 9월에 전사하였다.

유영춘은 유정의 아들로서 아버지와 함께 군수품을 조달하고, 아버지가 병이 난 뒤 병사를 거느리고 싸우다 1594년 10월 창암(倉巖)에서 전사하였다. 유백춘·유태영도 모두 적과의 싸움에 젊음을 바칠 것을 결의하고 전쟁에 참가하였고, 이 중 유태영은 전사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자료에는 대룡암(大龍巖)·동천(東川)·월성(月城)·광제천(廣濟川)·원원사(遠願寺)·무룡산(無龍山)·시현(柴峴)·팔공산(八公山) 등 영남 지방을 옮겨 다니며 적병과 싸운 전황·승전·포상·참적수(斬賊數)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 연구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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