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함(德涵). 호는 창계(滄溪). 아버지는 군수 임일유(林一儒)이며,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조석형(趙錫馨)의 딸이다. 이단상(李端相)·박세채(朴世采)의 문인이다.
1665년(현종 6) 사마시에 장원하였고, 1671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湖堂)에 뽑혀 사가독서하였다. 그 뒤 이조정랑·검상·부제학·대사헌·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694년(숙종 20)에 대사간·개성부유수 등을 역임, 이듬 해 부제학으로 있을 때 병이 들어 약물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그 뒤 참판에까지 이르렀다. 뜻이 크고 박식하였으며, 소성(小成)에 만족하지 않고 천인성명설(天人性命說)을 깊이 연구하였다. 경전과 역사서에 두루 정통하였고, 제자백가의 글에도 밝았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뒤에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에게도 수학하여,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 이이(李珥)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는 찬성하고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에는 반대하였다. 나주의 창계서원(滄溪書院), 함평의 수산사(水山祠)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창계집(滄溪集)』 27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