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치공(穉恭). 호는 운호(雲湖). 아버지는 함흥판관 임적(任適)이며, 어머니는 호조정랑 윤부(尹扶)의 딸이다. 임성주(任聖周)의 아우이다.
1762년(영조 38) 사마시에 합격, 1772년 동몽교관에 제수, 익위사시직(翊衛司侍直)을 거쳐, 서연관으로 세손(世孫: 정조)을 보필하며 학문을 강론하였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한 뒤 홍국영(洪國榮)의 세도정치에 밀려나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송화현감·사옹원주부·온릉령(溫陵令)·청산현감 등의 미관말직만 역임하였다.
청산현감 때 선정이 보고되어 왕의 특명으로 가자(加資)되고 중추(中樞)의 직함을 받았다. 평생 동안 영리에 마음쓰지 않고 오직 위기(爲己)의 학문에 전심하여 거경궁리(居敬窮理)로 높이 통달하려 하고, 존심양성(存心養性)을 통해 경지에 오르도록 힘썼다.
임정주의 학문은 형 임성주의 학통을 이어받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배격하고 이기일원의 주기설(主氣說)을 확립하였다. 저서로는 『운호집(雲湖集)』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