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농서인 『색경(穡經)』·『산림경제』·『임원경제지』·『식목실총(植木實總)』·『송계절목(松稧節目)』·『금송계좌목(禁松契座目)』 등에 주로 조림수종의 양묘와 보호에 관한 단편적이기는 하나 탁월한 식견이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임학이라는 학문의 형성은 190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즉, 1906년 대한제국농상공부 소관 아래 수원에 농림학교가 설립되고 임업속성과가 설치되어 이른바 현대식 임업고등교육이 실시됨으로써 비로소 임학으로서의 체계적인 학문이 움트기 시작했다. 1909년 의진사 편집부에서 『삼림학(森林學)』이라는 표제로 220면에 달하는 책이 국한문 혼용으로 출판됨에 이르러 현대식 임학의 첫 이정표를 형성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삼림의 형성과 분포, 양묘, 식재육림, 벌채이용 등 생산분야와 측수(測樹)·임가산법(林價算法)·교리(較利)·설제(設制) 등 경영 분야, 그리고 삼림관리·삼림법률·임정(林政) 등 임업정책 분야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다.
내용서술은 독일용어와 독일인 학자의 학설이 많이 인용된 것으로 보아 일본이 도입한 독일 임학을 재도입한 것이라 생각되며 개화 초기의 임학 또는 임업기술서로서 중요한 사적자료가 된다.
1917년부터 수원의 농림학교를 총독부농림전문학교로 승격시켰으며 다시 1922년에는 총독부고등농림학교로 개편하면서 임학과를 설치하였다. 1922년에는 총독부의 임업시험장이 설치되고 일본 임업기술의 도입과 동시에 임업에 관한 학술적인 시험연구가 착수되었다. 임업시험장에는 조림, 보호, 이용 및 시업(施業)의 3개과를 설치하고 주로 일본인들로 하여금 분야별로 실험연구를 실시하게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임학연구는 주로 임업시험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조림학(造林學)·삼림보호학(森林保護學)·목재이용학(木材利用學) 연구에 초석을 놓아주었다고 할 수 있다.
광복 후 고등기술교육에 대한 강한 필요성에 의하여 1951년 이후 서울대학교 이외에 11개 국립대학교와 10개 사립대학교에 임학과(또는 산림자원학과)가 설치되었고, 특히 1982년에는 강원대학교의 임학과가 임과대학으로 승격, 독립되어 임학고등교육에 노력하고 있다.
한편, 임업시험연구기관도 임업시험장(1987년 임업연구원으로 개칭) 이외에 임목육종연구소(林木育種硏究所)와 삼림자원조사연구소(森林資源調査硏究所)가 증설되었으나 산림자원조사연구소는 1981년 임업시험장으로 통합되었으며, 임목육종연구소는 정부기구 축소방침에 따라 1998년 임업연구원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1959년에 한국임학회(韓國林學會), 1971년에는 한국임정연구회(韓國林政硏究會) 그리고 1973년에 목재공학회(木材工學會)의 발족을 통하여 임학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유물이었던 임업시험장과 수원고등농림학교의 수목석엽관(樹木腊葉館, Herbarium)은 6·25전쟁중에 파괴되고 말았다. 그 뒤 대학의 시험장에서 수목석엽관 재건에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이창복(李昌福)의 노력으로 38선 이북의 것도 포함한 자생수목과 초본의 수목석엽관이 재건되었으며, 또 1973년 서울대학교 수목원 직제가 마련됨에 따라서 수목학의 연구무대가 형성됨에 이르렀다.
한편, 정태현(鄭台鉉)은 1957년 한글로 된 최초의 『한국식물도감』을 출판하고 그 뒤 이창복은 현재까지의 분류를 통합정리하여 『한국수목도감(韓國樹木圖鑑)』, 1974년에는 대학교육을 위한 교과서로서 『수목학(樹木學)』의 저작을, 또 1979년에는 『대한식물도감(大韓植物圖鑑)』을 출판하여 수목학연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육묘(育苗) 및 육림(育林)을 중심으로 하는 조림학 분야에 있어서도 각 대학과 연구소들이 6·25전쟁의 혼란을 치르고 점차 안정되어감에 따라 각 대학의 교수진과 시험장 연구소의 연구진들에 의하여 조림학, 특히 수목학 이외에 조림학의 기초가 되는 수목생리학과 생태학 및 삼림토양학 분야의 연구가 계속 이루어졌다.
한편, 임경빈(任慶彬)의 『조림학원론』, 김지문(金智文)의 『조림학』, 김장수(金樟洙)의 『생태학과 삼림』 등도 모두 조림학 및 삼림생태학 연구와 교육에 기여하고 있다.
6·25전쟁을 거쳐서 황량하게 거칠어진 광활한 산림의 복구를 위한 조림사업수행에 앞서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종자개량 문제였다.
때마침 제2차세계대전 후 세계 각국은 조림을 위한 종자개량 연구사업에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으므로 현신규(玄信圭)의 강력한 건의에 따라 우선 1953년부터 정부특별보조금에 의한 임목육종연구사업이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내에서 발족을 보게 되었다.
1956년에 수원에 임목육종연구를 전담하는 임업시험장 육종지장이 설치되고, 1963년에 임목육종연구소로 승격되었으며, 또한 각 대학에서도 임목육종학을 교수하는 교수들에 의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임목육종연구소에서는 리기테다 개량소나무, 은수원사시, 양황철 등 교잡에 의한 개량품종을 육성, 보급하는 한편 선발육종에 의한 경제수종들의 개량종자 생산을 위한 750정보의 채종원(採種園)을 조성하여 개량종자 생산이 시작되고 있다.
조림은 삼림보호가 반드시 뒤따라야 하므로 삼림보호학(森林保護學) 연구는 조림학 연구와 병행되어왔으며 일반 피해에 대한 삼림보호학에서 점차로 삼림병리학(森林病理學)과 삼림곤충학(森林昆蟲學)이 갈려나가서 각각 독립된 분야로 발전하여 나갔다.
1950년대 우리 나라의 주요 사방림지(砂防林地)는 실로 60만 정보에 달하여 사방사업은 임업 분야에 있어서 하나의 큰 명제였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사방공학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조태용(趙泰庸)의 저서 『사방공학(砂防工學)』은 우리 나라 사방공학의 첫 교본이며 그 뒤 우보명(禹保命)도 『사방공학』을 출판하였다.
특히, 우보명은 자메이카에 파견되어 우리 나라 사방기술을 과시한 바도 있다. 또한, 측수학(測樹學)·항공측정학(航空測定學)은 삼림경영학의 기초학으로 1969년에 삼림자원조사소(森林資源調査所)가 설립됨에 따라 이 분야의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 분야의 저서로는 김갑덕(金甲德)의 『측수학』이 있다.
환경문제가 점차 중요시됨에 따라 1973년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조경학과(造景學科)가 설치되는 동시에 특수대학원으로서 환경대학원이 설립되고, 또 영남대학교에도 조경학과가 신설됨으로써 이 분야 연구에 자극을 주었으며, 조경학회(造景學會)도 설립되어 연구논문이 속출하게 되었으며, 또한 이 분야의 저서로는 윤국병(尹國炳)의 『조경학』을 들 수 있다.
임산가공학 분야는 1970년 서울대학교에 임산가공학과의 신설에 뒤이어 강원대학교·전남대학교 등에도 신설되어 이와 더불어 이 분야의 연구가 활기를 띠었다. 넓은 의미의 임산가공학은 목재이학(木材理學)과 목재화학(木材化學)을 그 기초로 삼고 있으며 목재이학은 그 응용과학으로 목재공학을 이루었으며, 목재화학은 그 응용과학의 한 분야로서 펄프 및 제지학을 이루게 된다.
1973년에 목재공업기술협회가 발족, 1980년부터 목재공학회로 개칭되어 학술지를 발간하고, 또한 1966년에는 펄프·종이기술협회가 창설되어 회지를 발간하여왔다. 이 분야의 저서로는 1977년 위흡(魏0x9D4B)의 『목재이학』, 1981년 이필우(李弼宇) 등의 공저로 나온 『목재공학(木材工學)』, 1982년에 출판된 정대교(鄭大敎)의 『목재이용학(木材利用學)』과 1983년에 출판된 신동소(辛東韶) 등의 공저로서 『임산화학(林産化學)』이 출판되어 연구에 기여하였다.
앞으로 임학의 연구는 삼림식생의 복구와 더불어 필연적 결과인 야생동물의 집단을 육성, 활용하는 학문으로 분화될 것이다. 우리 나라 축산진흥을 위한 목초의 생산과 방목자원(放牧資源)의 육성, 또한 임목의 단벌기집약재배(短伐期集約栽培)에 의한 재생에너지원으로서의 바이오매스(biomass) 생산과 그 에너지전환에 관한 기술과 학리가 날로 축적되어, 각각 새로운 학문 분야가 형성될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국토보전·수자원함양·공해방지 등 인간 후생자원을 생산하는 삼림의 기능을 발전시키는 학리와 기술을 연구하는 새 세대의 학문으로서 발전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