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왕 12성) 창건된 절로, 고려 때 밀교적 영향을 받아 번성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사세가 축소되었다. 이 시기에는 상대웅전 · 하대웅전을 비롯한 중심부의 전각만 겨우 중수되었다.
장곡사의 가람배치는 크게 2개의 구역으로 구성되는데, 하나는 북쪽 상단의 상대웅전 구역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아래단의 하대웅전 구역이다. 설선당은 원래 선방으로 지어졌다가 부엌칸 쪽 2칸은 더 달아내어 요사로서도 아울러 쓰게 하였다. 건립 연대는 하대웅전 건립 시기와 비슷한 17세기 초로 추정된다.
현재의 평면은 ㄱ자 형태이지만 원래는 一자형 평면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원래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선방건물이었으나 나중에 부엌을 넓히고 서편으로 3칸의 승방을 덧붙이면서 현재와 같은 ㄱ자형 평면이 되었다.
현재의 평면은 가운데 부엌을 두고 북편으로 대중방과 선방이 배치되고, 부엌 서측으로 주지실과 작은 방이 배치되어 있다. 각 방의 전후로는 모두 툇간마루나 쪽마루를 설치해두었다.
기단은 자연석 허튼층쌓기로 만들고 자연석 덤벙주초로 초석(礎石)을 삼았다. 기둥은 모두 원주를 썼으나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 즉 약한 배흘림이 있는 기둥, 상하 폭이 같은 민흘림 기둥, 자연스럽게 휘어진 기둥이 혼용되었다. ‘說禪堂’ 편액이 걸린 중정 전면부와 남서부는 건축의 양식과 기법이 현격하게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둥머리에서는 일부 공포(栱包)가 짜여지기도 했다. 대중방의 전면에는 2출목형식의 공포를 끼워두었고, 나머지는 공포를 생략하였다. 특히 출목소첨차에는 연화(蓮花)를 조각하여 화려한 모습이다.
이 건물은 후일 증축되면서 원래의 모습이 바뀌기는 했지만, 증축 부분을 제외하고는 구조적으로나 양식적으로 조선 후기 요사채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