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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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에서 장기간 입출번(入出番)의 교대 없이 유숙하며 계속 근무하던 제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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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궁중에서 장기간 입출번(入出番)의 교대 없이 유숙하며 계속 근무하던 제도.

내용

오위(五衛)의 군병은 대개 지방의 정병(正兵)이나 수군(水軍)이 교대로 복무하는 의무병이었으나, 선전관·내금위(內禁衛)·우림위(羽林衛)·겸사복(兼司僕)·족친위(族親衛)·충의위(忠義衛) 같은 병종이나 환관 등은 그 자체가 하나의 직업으로 타 병종과의 교대 없이 근무하는 장번에 해당하였다.

이들에게는 급료 외에 보(保)가 지급되었는데 장정 2인을 1보로 하였다. 특별히 갑사(甲士)에게는 2보가 지급되었다. 이들 장번은 매 1일분의 녹(祿)을 지급받았는데, 연중 계속하여 정액(定額)대로 받는 선전관·겸사복 등과 연중 계속하여 녹을 받되 근무일수에 따라 액수에 차이가 생기는 족친위·충의위가 구분된다.

한편 장번환관은 내시부에서 매월 요도(料圖)를 만들어 호조에 바치면 풍저창(豊儲倉)을 통하여 지급받았다. 임진왜란 직후인 1599년(선조 32)에는 삼수미(三手米)의 급보문제(給保問題)가 대두되어 훈련도감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한때 도감군의 장번을 없애고 분번(分番)시키기까지 하였다.

참고문헌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전록통고(典錄通考)』

  • - 『만기요람(萬機要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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