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윤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수찬, 전라좌도암행어사, 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백영(伯永)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64년(영조 40)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덕수(德水)
주요 관직
응교
정의
조선 후기에, 수찬, 전라좌도암행어사, 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백영(伯永). 장설(張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진엽(張震燁)이고, 아버지는 장지복(張至復)이며, 어머니는 신사석(申思奭)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6년(정조 10) 별시문과 을과로 급제하였다. 1795년에는 장령(掌令)을 지냈다. 1798년에는 현풍 현감에 재직하면서 추곡하우(秋穀夏牛)의 절반은 원곡(元穀)으로 바치고 절반은 돈으로 바꿔 바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성주(星州)의 노장곡면(蘆長谷面) 10리를 현풍으로 옮겨 그 소출을 사용하게 해줄 것도 요구했고, 조창과 왜관 두 곳에 하납(下納)하는 일을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1801년(순조 1)에는 수찬(修撰)의 직에 있으면서 최중규(崔重圭)를 유배하라는 전교의 부당성을 논하다가 왕으로부터 불경(不敬)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1802년에는 전라좌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지방 수령들의 비리를 조사하여 이에 대해 조치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그 곳의 불합리한 실정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였다. 그해 응교(應敎)에 재직하다가 강진현(康津縣) 고금도(古今島)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정조실록(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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