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

  • 역사
  • 인물
  • 남북국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무역상으로 중국에서 활약한 상인. 무역상.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평로군절도 동십장 겸등주제군사압아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기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무역상으로 중국에서 활약한 상인. 무역상.

개설

장보고(張保皐)가 동아시아의 국제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9세기 전반기에 많은 신라인들이 당나라에서 무역업에 종사하였는데, 장영은 특히 장보고의 으뜸가는 심복 부하로서 산동반도 남쪽 끝 문등현(文登縣) 청녕향(淸寧鄕) 적산포(赤山浦) 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재당(在唐) 신라인사회의 우두머리였다.

생애와 활동사항

그가 언제부터 당나라에서 무역업에 종사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824년(헌덕왕 16) 무역선을 끌고 일본에 갔다가 당나라로 돌아온 장대사(張大使)가 그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청해진(淸海鎭) 설치 이전 시기부터 활동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일본인 승려 엔닌(圓仁)이 적산촌의 법화원(法華院)으로 찾아온 840년대 전반경에 이 일대 신라인사회의 치외법권적인 자치기구였던 구당신라소(勾當新羅所)의 압아(押衙)로서 이를 장악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당나라로부터 평로군절도동십장 겸 등주제군사압아(平盧軍節度同十將兼登州諸軍事押衙)의 직함을 받았다. 또한,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을 임대사(林大使)·왕훈(王訓) 등과 함께 관리하기도 하였다.

당시 적산포는 장보고의 무역선이 중국에 기착하는 첫번째 정박지였고, 이곳에는 많은 신라인들이 거류하였던만큼 장영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장보고의 으뜸가는 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記)』

  • - 「9세기(世紀) 재당한국인(在唐韓國人)에 대한 고찰(考察)」(이영택, 『한국해양대학논문집』17, 1982)

  • - 「장보고해상세력(張保皐海上勢力)에 관한 고찰(考察)」(이영택, 『한국해양대학논문집』 14, 1979)

  • - Ennin“s Travels in T”ang China(Edwin O.Reischauer, The Ronald Press Company, 195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