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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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무원종공신 1등 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이칭
  • 경수(景受)
  • 이칭응기(應祺)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정유재란
  • 본관울진(蔚珍)
  • 사망 연도1630년(인조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창녕현감|부사
  • 출생 연도1556년(명종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선무원종공신 1등 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개설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경수(景受). 일명 응기(應祺)라고도 한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고, 1586년 무과중시에 급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직 감찰로서 해서초토사(海西招討使) 이정암(李廷馣)의 휘하에서 군관(軍官)으로 활약하였다.

1592년 8월 말 해주에 주둔한 왜장 구로다(黑田長政)가 도내에 있는 왜군을 모아 대병력으로 연안성을 침범할 때 화살을 쏘아 적장 한 사람을 사살함으로써 성내 군민(軍民)의 사기를 높였고, 성의 동문을 지켜 적의 침입을 막았다.

적장 구로다로부터 한(漢)나라의 번쾌(樊噲)와 장비(張飛)와 같은 장수라는 평을 받았다. 군공(軍功)으로 배천군수가 되어 연안별장을 겸하고 군사 500명으로 계속 연안성을 지켰다.

정유재란 때는 창녕현감으로 방어사 곽재우(郭再祐) 휘하에 들어가 조전장으로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 방어에 참여하였다. 그 뒤 부사 등을 지내고 1604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고 공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연안현충사(顯忠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 『사유재집(四留齋集)』

  • - 『창의록(倡義錄)』

  • - 『여지도서(輿地圖書)』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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