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월송리 재홍마을의 동쪽 골짜기를 ‘사그점골’이라 하는데, 백자요지는 이 골짜기에 있는 월송저수지 동쪽 500m 지점에 위치한다.
현재 완만한 자연 경사면에 약 100여m의 간격을 두고 2기의 가마가 노출되어 있다. 가마는 정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2기 모두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칸가마이다.
두 가마 모두 노출된 상황으로 보아 4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가마 끝의 격벽(隔壁 : 칸을 막은 벽)의 상황으로 보아 5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가마는 봉통 부분쪽인 1실이 가장 좁고 위로 오를수록 점차 넓어지는데, 저수지와 보다 멀리 떨어진 2호가마의 경우 1실의 너비가 가로 260㎝, 세로 120㎝인 반면, 4실은 가로 420㎝, 세로 260㎝이다. 각 실의 천장은 궁륭형(穹隆形)이며 가마바닥은 경사져 있다.
각 실을 나누는 칸벽의 두께는 25㎝∼30㎝ 정도이며 칸벽 아래에 불창 구멍을 냈다. 불창 수는 각 실의 크기에 따라 그 수도 많아져 1실과 2실의 사이는 11개이지만, 3실과 4실과의 사이는 14개 또는 18개나 된다.
각 실의 천장 또한 위로 오를수록 높아져 남아 있는 1실의 높이가 약 80㎝, 3실은 180㎝이다. 현존 가마의 길이는 약 8.5m이며 봉통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흙덩어리를 이용하여 가마를 축조하였으며 안쪽벽에는 백토가 발라져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백자는 발 · 대접 · 접시 · 보시기 등과 같은 일상생활용의 식기류이며, 제기도 함께 제작되었다. 유태(釉胎)는 회색을 띠는 것이 많고 청색이 감도는 회색 또는 짙은 회색도 있다. 기벽(器壁)이 두껍고 선이 단조로워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점은 조선시대 말에서 근대에 이르는 지방백자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구연(口緣)은 직립되거나 안으로 굽었으며, 기벽의 선은 사선이나 수직으로 경직되고 그릇의 밑이 넓다. 굽은 내경(內傾)된 다리굽이며 굽 안 중심이 모두 볼록하게 돌출되었다. 굽은 단정하게 깎였으며 접시 등과 같은 작은 그릇은 크기에 비하여 굽지름이 매우 넓다.
모든 그릇들은 가마 안에서 포개구이되었는데 그릇들이 높은 열에서 서로 붙지 않도록 그릇 사이의 받침을 두었다. 받침으로는 흙모래빚음이 이용되었으며, 그 수가 매우 많아 안바닥과 굽 접지면에 둥글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가마의 운영 시기는 이곳에서 생산된 백자의 양식으로 보아 19세기에 들어와 개요(改窯)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가마가 폐쇄된 시기는 이 마을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1900년대 초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