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농민조합

  • 역사
  • 단체
  • 일제강점기
1921년 중국 북경에서 조직되었던 농민조합.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현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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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1년 중국 북경에서 조직되었던 농민조합.

내용

1921년 5월 20일 중국 북경(北京) 교외에서 공산계 인물 김정하(金鼎夏)가 동지 박종근(朴宗根)·강경선(康景善)·서영완(徐永琬) 등과 함께 조직하였다.

설립 목적은 공산주의를 선전하되 일본제국주의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자유와 독립을 찾으려는 것으로, 특히 일제의 농촌압박과 착취에 항거하여 농민들의 대동단결을 촉구하였다.

이에 앞장선 김정하·강경선은 농민조합 외에 공산청년회(共産靑年會)와 태극단(太極團) 등을 별도로 조직, 활동하였으며, 1923년 1월부터 6개월간 중국 상해(上海)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 농민조합대표로 김정하가 참석하였다.

이 회의는 모스크바의 자금으로 운영되었으므로 초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적색농민조합에서도 대표를 선임, 상해에 파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70여 회의 회의가 진행, 속개되었으나 창조파(創造派)와 개조파(改造派)가 각각 자기 측의 이익 대변에만 급급하다 보니 본래의 목표인 임시정부의 개편에는 손도 못대고 말[言語]의 성연(盛宴)으로 끝낸 셈이 되었다.

특히 김정하는 적색농민조합을 대표하여 농부의 권익옹호와 공산주의 이념 전파에 전심전력하였으나 민족계의 공격과 정면대결 때문에 실질적인 권익옹호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임시정부 창조에 실패한 적색농민조합대표는 1923년 7월 5일 다시 그 본거지로 귀환하고 조합발전책을 논의하였다. 1930년 이후에는 이렇다 할 활동상황이 없었다.

참고문헌

  • - 『조선민족운동사료』1∼6(고려도서,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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