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오륜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우상시, 좌산기상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채미헌(採薇軒)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두문동 72인
  • 본관정선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우상시|좌산기상시|형조판서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안식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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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우상시, 좌산기상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정선(旌善). 호는 채미헌(採薇軒). 대제학(大提學) 전분(全賁)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고관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이성계 세력에 의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창업되자,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켜 두문동으로 들어간 인물로서 유명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73년(공민왕 22) 과거에 급제하였다. 1391년(공양왕 3) 우상시(右常侍)·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형조판서(刑曹判書)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392년(공양왕 4)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가 조선 태조에 의하여 본향안치(本鄕安置)의 처벌을 받았다. 이때 본향안치된 인물이 성석린(成石璘)·이윤굉(李允紘)·유혜손(柳惠孫)·안원(安瑗)·강회중(姜淮中)·신윤필(申允弼)·성석용(成石瑢)·정희(鄭熙) 등인데, 이들 중 성석린과 같이 조선 왕조에서 벼슬을 살았던 인물들도 있었다. 뒤에 풀려나서 서운산(瑞雲山, 강원도 정선 소재)에 은거하였다.

두문동 72인 중의 한 사람이며, 뒷날 경상남도 안의(安義)에 소재한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전오륜의 유고(遺稿)와 행적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책이 『채미헌실기(採薇軒實記)』이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채미헌실기(採薇軒實記)』

  • - 「채미헌 전오륜의 생애와 업적」(김대순,『강원문화사연구』14, 강원향토문화연구회, 2009)

  • - 「소위 ‘두문동72현’의 정치성향」(김정자,『부대사학』15·16,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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