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우상시, 좌산기상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2년(공양왕 4)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가 조선 태조에 의하여 본향안치(本鄕安置)의 처벌을 받았다. 이때 본향안치된 인물이 성석린(成石璘)·이윤굉(李允紘)·유혜손(柳惠孫)·안원(安瑗)·강회중(姜淮中)·신윤필(申允弼)·성석용(成石瑢)·정희(鄭熙) 등인데, 이들 중 성석린과 같이 조선 왕조에서 벼슬을 살았던 인물들도 있었다. 뒤에 풀려나서 서운산(瑞雲山, 강원도 정선 소재)에 은거하였다.
두문동 72인 중의 한 사람이며, 뒷날 경상남도 안의(安義)에 소재한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전오륜의 유고(遺稿)와 행적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책이 『채미헌실기(採薇軒實記)』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태조실록(太祖實錄)』
- 『채미헌실기(採薇軒實記)』
- 「채미헌 전오륜의 생애와 업적」(김대순,『강원문화사연구』14, 강원향토문화연구회, 2009)
- 「소위 ‘두문동72현’의 정치성향」(김정자,『부대사학』15·16,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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